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는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계엄령 선포 6시간만에 국회의 의결을 거쳐 해제가 되었지만, 현재 비상계엄령의 후폭풍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대 비상계엄령 선포의 시기와 그 결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1961년 5.16 군사정변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고 출범한 제2공화국이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때에 군 내부의 정국 혼란에 대한 불만을 등에 업고 박정희의 주도로 군부가 군사정변을 일으켰으며, 군사정변 직 후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에 헌정 질서가 중단되고 군사 정권은 모든 행정권과 입법권을 장악했습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새 헌법이 제정되며 비상계엄은 종료되었습니다. 이 비상계엄은 박정희의 군사정권이 장기집권하는데 발판이 되었습니다.
2. 1972년 10월 유신
박정희 정부는 눈에 띠는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반정부 시위와 사회적 갈등의 심화를 야기했으며 이와 함께 남북은 냉전을 이어갔습니다.
이에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해서 1972년 10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였으며, '유신헌법'을 발표했습니다.
박정희가 선포한 유신체제는 1970년대 후반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선포한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피살되면서 종료되었습니다.
3.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박정희의 죽음 이후 이번에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 군부가 권력 장악을 위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생과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특히 광주에서는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되었으며 대규모 인권침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때의 상처는 지금도 전 국민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군부의 강경한 진압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국내와 국외의 여론들은 계속해서 비판했으며, 여전히 시민들은 곳곳에서 저항을 했습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직선제가 도입이 되었고, 이에 따라 전두환의 군사정권은 종말을 맞이했고 민주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4.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 남발 및 국정 마비, 예산 삭감등을 국정을 뒤흔드는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국회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마자 국회에 모여 본회의를 진행하고, 190명의 표결을 통해 비상계엄령 해제를 요구하였으며 이에 따라 6시간 만에 해제되었습니다.
이는 헌정사상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된 비상계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 이후 후폭풍
현재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에 대한 표결을 앞두고 있으며,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의 직무정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한 상태입니다.
이번 비상계엄령으로 인해 국가의 경제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해외에서 또한 대한민국의 국격( 한화 환전 거부, 해외여행 위험국가 지정 등)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12월 7일 토요일 오후 7시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행소추 표결이 어떻게 진행될지, 주말에 전국에서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촛불을 들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